꽃을 수확하던 농장, 추억을 수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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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378 views 작성일 2026.07.2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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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후라노의 팜도미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보랏빛이었다. 완만한 언덕을 따라 라벤더가 줄지어 피어 있었고, 그 너머로는 홋카이도의 푸른 산과 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보라색 라벤더 사이에는 빨강, 노랑, 분홍색 꽃들이 띠처럼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거대한 캔버스 위에 물감을 정성스럽게 칠해 놓은 듯했다.

라벤더 밭 주변에서는 모두가 잠시 사진작가가 되었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배경을 찾기 위해 꽃밭 사이를 오갔고, 휴대전화를 든 채 서로에게 한 걸음만 왼쪽으로, 고개는 조금 오른쪽으로 돌려 보라고 주문했다. 사진을 찍히는 사람보다 찍어 주는 사람이 더 진지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디에서 찍어도 엽서나 달력에 나올 법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팜도미타를 그저 ‘인생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농장 안을 천천히 걷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유명하고 넓은 관광지인데 왜 입장료가 없을까. 총면적이 약 15헥타르이고, 라벤더 밭만도 약 5헥타르에 이른다고 한다. 꽃을 심고 가꾸고 시설을 관리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들 텐데도 누구나 무료로 들어와 꽃을 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더 궁금한 것은 이곳이 처음부터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진 곳인가 하는 점이었다.

알고 보니 팜도미타는 관광지가 아니라 평범한 농장으로 시작했다. 이름도 농장을 개간한 도미타 씨의 성에서 비롯되었다. 후라노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도미타 씨는 이 지역의 서늘한 기후가 라벤더 재배에 적합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1958년부터 향료 생산을 위한 라벤더 시험 재배를 시작했고, 이후 재배 면적을 넓혀 갔다.

지금은 사람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라벤더지만, 당시의 라벤더는 감상용 꽃이 아니었다. 향수와 화장품에 사용할 오일을 얻기 위해 수확하는 농작물이었다. 오늘날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꽃밭에서 당시 농부들은 수확량과 오일의 품질, 판매 가격을 걱정했을 것이다. 아름다움보다 생산성이 중요했고, 풍경보다 생계가 우선이었다.

한동안 라벤더는 홋카이도 농가에 새로운 소득을 안겨 주는 유망 작물이었다. 그러나 무역 자유화가 진행되고 값싼 외국산 향료와 합성 향료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생산비가 높은 홋카이도산 라벤더 오일은 가격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많은 농가가 라벤더 재배를 포기했고, 꽃밭을 갈아엎고 다른 작물을 심었다.

팜도미타 역시 같은 위기에 직면했다. 기존 방식대로라면 선택은 단순했다. 생산비를 줄이거나, 가격을 낮추거나, 라벤더 재배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쉬운 답은 아니었다. 값싼 수입 향료와 가격으로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라벤더를 포기하면 오랫동안 쌓아 온 재배 기술과 농장의 정체성도 함께 사라질 수 있었다.

여기서 팜도미타의 경영사례로서의 의미가 시작된다.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농장은 흔히 ‘어떻게 더 싸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나 팜도미타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라벤더의 가치는 정말 오일에만 있는가?”

전환점은 뜻밖에도 한 장의 사진에서 찾아왔다. 1976년 팜도미타의 라벤더 밭 사진이 일본국유철도가 발행한 달력에 실렸다. 사진 속에는 후라노의 언덕과 보랏빛 라벤더 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달력을 본 사람들은 그 풍경에 매료되었고, 사진 속 장소를 직접 보기 위해 후라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라벤더 농장을 살린 것은 새로운 재배 기술도, 대규모 시설 투자도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이 라벤더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도미타 씨는 그때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라벤더는 베어 내고 오일로 가공해야만 돈이 되는 작물이 아니었다. 꽃이 들판에 피어 있는 그대로도 사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라벤더를 구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라벤더 밭을 보고 걷고 향기를 맡고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왔다.

농작물로서의 라벤더는 경쟁력을 잃고 있었지만, 풍경과 경험으로서의 라벤더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자산이었다.

팜도미타는 라벤더라는 상품을 바꾼 것이 아니라 라벤더의 가치를 재정의했다. 향료의 원료에서 관광 자원으로, 수확의 대상에서 감상의 대상으로, 농산물에서 경험으로 바꾸었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었다.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과거 팜도미타의 고객은 향료 회사였다. 농장은 라벤더를 수확해 오일이나 원료의 형태로 납품했다. 그러나 관광지로 전환한 뒤 고객은 일반 여행객이 되었다. 판매하는 것도 달라졌다. 더 이상 라벤더 오일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향기, 휴식, 사진, 추억을 제공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팜도미타는 생산 중심의 사업에서 경험 중심의 사업으로 이동한 셈이다.

이후 팜도미타는 꽃밭과 상품, 음식, 전시, 휴식 공간을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했다. 방문객은 라벤더 밭을 걷고 사진을 찍는다. 라벤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맛보고, 향수와 오일의 향을 맡아 본다. 비누, 방향제, 립밤, 수건 같은 기념품을 고르고, 드라이플라워로 장식된 공간에서 또 다른 사진을 찍는다. 라벤더의 재배 과정과 오일을 추출하는 증류 시설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라벤더 소프트아이스크림은 팜도미타의 경영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처음에는 꽃향기가 나는 아이스크림이 과연 맛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구입한다. 한입 먹어 보면 달콤한 맛 뒤로 라벤더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향수 맛 같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팜도미타에 왔다면 한 번쯤 먹어 봐야 하는 여행 의식이 되었다.

중요한 점은 소프트아이스크림 자체의 맛만이 아니다. 방문객은 라벤더를 눈으로 보고, 코로 향을 맡은 뒤 혀로도 경험한다. 하나의 농산물이 시각, 후각, 미각을 아우르는 경험으로 확장된 것이다. 팜도미타는 라벤더 한 가지로 풍경과 음식, 상품과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이곳의 무료 입장 정책도 흥미로운 경영 전략이다. 처음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것이 수익을 포기하는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이다.

입장료가 없으니 가족 단위 여행객도, 단체 관광객도, 잠깐 들른 방문객도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다. 방문의 문턱이 낮아지면서 농장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 이들은 꽃밭을 무료로 걷지만, 더운 날씨에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사고, 향수와 오일을 구경하다가 작은 기념품도 고른다.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줄 비누와 방향제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무료 입장은 수익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고객을 불러들이는 장치다. 입장권에서 직접 돈을 벌기보다 많은 사람이 오래 머물고 다양한 상품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일반적인 관광지는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입장료를 받는다. 그러나 팜도미타는 공간은 무료로 개방하고, 그 안에서 생겨난 감동과 기억을 상품으로 연결한다. 꽃밭을 보는 데는 돈이 들지 않지만, 꽃밭에서 느낀 감정을 집으로 가져가려면 향수, 오일, 비누, 드라이플라워 같은 상품을 구입하게 된다.

팜도미타는 입장권을 파는 대신 추억을 가져가는 방법을 판다.

라벤더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여행의 맛이 되고, 향수와 오일은 여행의 향기가 된다. 드라이플라워와 기념품은 후라노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된다. 방문객들은 꽃밭을 무료로 보고 나오지만, 대부분은 작은 상품 하나쯤 손에 들고 농장을 나선다. 그리고 휴대전화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남는다.

이 전략의 장점은 상품을 억지로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아름다운 꽃밭이 먼저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고, 그 감정이 구매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꽃밭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이자 매장이고, 방문 경험 전체가 상품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팜도미타는 농업에서 완전히 떠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농업을 중심에 두고 관광, 식음료, 제조, 판매, 교육을 연결했다. 라벤더를 직접 재배하고, 오일을 추출하며, 이를 활용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생산에서 가공, 체험, 판매에 이르는 과정을 하나의 장소 안에 통합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 업체에 원료만 납품하던 농장이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사업으로 바뀌었다는 의미도 갖는다. 과거에는 향료 회사가 가격을 결정하면 농장은 그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관광객에게 직접 경험과 상품을 판매하게 되면서 팜도미타는 가격과 브랜드, 고객 관계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한 농산물은 가격 경쟁에 쉽게 노출된다. 비슷한 제품이 더 싼 가격으로 수입되면 고객은 공급자를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팜도미타의 풍경과 장소, 역사와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그대로 복제하기 어렵다. 라벤더 오일은 대체될 수 있지만, 팜도미타에서 보낸 여름날의 기억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팜도미타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다. 상품의 차별화보다 경험의 차별화를 이뤄 낸 것이다.

팜도미타의 성공은 후라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농장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숙박시설과 식당, 교통, 지역 상점도 함께 혜택을 보게 되었다. 한 농장의 라벤더 밭이 지역 전체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 셈이다. 오늘날 후라노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보랏빛 라벤더 밭을 먼저 생각한다. 팜도미타는 자신의 농장만 유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후라노라는 지역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도 기여했다.

처음 팜도미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라벤더 밭의 아름다움에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농장의 역사를 알고 나니 같은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눈앞의 보랏빛은 단순한 자연의 선물이 아니었다. 기존 사업이 무너질 위기에서 자원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사업의 고객과 수익 구조를 바꾼 결과였다.

팜도미타는 값싼 외국산 향료보다 더 싸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는 대신 경쟁의 기준 자체를 바꾸었다. 향료의 가격이 아니라 풍경의 아름다움으로, 생산량이 아니라 방문객의 감동으로, 농작물의 판매가 아니라 경험의 가치로 승부했다.

경영에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은 반드시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서 변화가 시작된다. 팜도미타가 가진 것은 처음부터 라벤더 밭이었다. 달라진 것은 라벤더가 아니라 라벤더의 가치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한때 라벤더의 가치는 꽃을 베어 낸 뒤에야 생겼다. 꽃을 수확하고 오일을 추출해야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꽃을 베지 않고 그대로 피워 두는 것이 더 큰 가치를 만든다. 라벤더가 들판에 남아 있어야 사람들이 찾아오고, 걷고, 향기를 맡고,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팜도미타는 꽃을 수확하던 농장에서 추억을 수확하는 농장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저마다의 인생 사진을 찍는다. 나 역시 보랏빛 꽃밭을 배경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진 속의 내 모습만이 아니었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라벤더 밭을 지켜 내고, 그 가치를 새롭게 정의해 농장의 운명을 바꾼 이야기가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팜도미타에 인생 사진을 찍으러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농장이 새로운 비즈니스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이야기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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