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사람의 네버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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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ppyYJ 댓글 0 comments 조회 131 views 작성일 2026.08.0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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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조명이 켜지고 이승철이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의 환호가 거대한 파도처럼 일었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말리꽃’, ‘인연’,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처럼 익숙한 노래들이 이어졌다. 노래마다 서로 다른 시절의 기억이 따라 나왔다. 어떤 곡은 젊은 날의 사랑을, 어떤 곡은 지나간 사람과 잊고 지낸 마음을 불러냈다.

그날 내가 만난 것은 히트곡 많은 가수만이 아니었다. 40년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목소리로 건너온 한 사람이었다.

1986년 밴드 부활의 보컬로 데뷔한 이승철은 올해로 음악 인생 40주년을 맞았다. 한 분야에서 40년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좋아서 시작한 일도 오래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때로 권태가 된다. 유행은 바뀌고 새로운 스타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자신에게 쏟아지던 시선과 박수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무대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한자리에 머문다는 뜻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익숙한 자신을 끊임없이 넘어서는 일이다. 이승철의 40년은 반복이 아니라 변화와 갱신의 시간이었다. 그는 과거의 대표곡에만 기대지 않았다. 새로운 노래를 부르고 젊은 세대와 어울리며, 오래된 노래에도 지금의 감정을 불어넣었다.

그의 무대가 아름다웠던 것도 예순의 나이에 젊어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예순의 시간과 경험을 간직한 채 여전히 새로운 순간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에는 힘이 있었고 몸짓에는 장난기가 넘쳤다.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유가 있었으며, 말 한마디와 손짓 하나에도 오랜 무대 경험이 배어 있었다.

무엇보다 관중을 공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노련함이 돋보였다. 그는 박수를 강요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몇 마디 말과 가벼운 손짓만으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춤추고 노래하게 했다. 그가 한 소절을 멈추면 객석이 빈자리를 채웠고, 손을 내밀면 수많은 목소리가 화답했다.

무대를 장악한다는 것은 혼자 돋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관객 모두를 공연의 일부로 만드는 일이었다. 언제 숨을 죽이고, 언제 박수를 보내고, 언제 함께 노래해야 하는지를 그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타고난 끼에 수많은 무대에서 쌓은 경험이 더해진 결과일 것이다.

공연 중반에는 박보검이 깜짝 등장했다. 그가 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박보검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이승철과 ‘내가 많이 사랑해요’를 함께 불렀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대에 속했지만 한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젊은 배우의 맑고 단정한 분위기와 오랜 가수의 깊은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장면을 보며 오래 활동한다는 것은 혼자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사람을 자신의 무대로 기꺼이 초대하고, 그에게 쏟아지는 박수까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박보검의 등장은 이승철의 무대를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음악이 새로운 세대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젊음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는다.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함께 무대를 넓힌다.

어쩌면 이것이 나이 들어 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자리를 움켜쥐는 대신, 자신이 쌓아 온 깊이를 지키면서도 새로운 사람과 기꺼이 어울리는 것. 젊어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잃지 않는 것.

나이 듦의 반대말은 젊음이 아니라 멈춤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네버엔딩 스토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젊은 시절에는 헤어진 사람과의 재회를 노래한 가사로만 들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들으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한때 품었던 꿈과 잊고 지낸 열정, 세월 속에 놓쳐 버린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움을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과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젊은 날의 꿈은 더 깊어진 모습으로 돌아오고 잊었던 열정은 지금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이승철에게도 지난 40년 동안 수많은 끝이 있었을 것이다. 부활을 떠난 순간, 음악의 유행이 바뀌던 시절,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던 때가 하나의 끝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끝을 결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무대에 올랐다. 그렇게 수많은 끝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며 40년을 걸어왔다.

돌아보면 나 역시 삶의 한 고비를 넘을 때마다 그것이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치열한 입시를 통과하고 나면 평탄한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박사 학위만 받으면 될 것 같았고, 교수로 임용되면 안정된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의 문을 열 때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길이 놓여 있었다. 목표에 도달하면 잠시 안도했지만, 그것이 결승점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리를 잡으면 새로운 책임이 생겼고, 한 가지 걱정을 넘기면 또 다른 걱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직장을 얻으면,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루면, 자녀가 성장하면 마침내 모든 것이 안정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나 다음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삶이 끝없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뜻만은 아니다. 새로운 관문이 나타난다는 것은 아직 살아갈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의 목표를 이룬 뒤 다시 꿈을 꾸고, 익숙한 역할이 끝난 뒤 새로운 역할을 만난다. 삶이 좀처럼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때로 버겁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아직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삶은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없다. 행복한 순간이 영원한 결말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실패와 상실이 삶 전체를 슬픈 이야기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기쁨 뒤에는 새로운 걱정이 찾아오고, 절망 뒤에도 뜻밖의 만남과 기회가 생긴다.

우리가 결말이라고 믿었던 순간은 대부분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한 장면에 불과하다.

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불이 켜졌지만, 이승철의 이야기가 끝났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젊은 세대와 함께 노래하고, 관객을 무대 안으로 불러들이며, 여전히 다음 장면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40년은 한 가수의 결말이 아니었다. 긴 이야기 속의 한 장이었다.

우리 삶도 그러할 것이다. 어떤 날은 환호를 받고, 어떤 날은 다른 사람에게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계속 다음 이야기를 써 나간다.

우리 삶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멈추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삶은 네버엔딩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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